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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시간 속에서, 하루를 살고 그 안에서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있다. 또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요즘은 그 말이 무색하게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우리 주변 환경뿐만 아니라, 일상 속 우리의 모습에서도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도시재생 차원에서도 낡은 건물들을 재건축하거나 푸른 녹지 환경을 조성하는 사업 등을 통해 아무것도 없던 곳에 나무를 심고, 미용이든 건강이든 외적으로는 다이어트나 헤어스타일 변화 등이 있다.
내외적인 요소들로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동안,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며 현재로 이어져 오는 공간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는 공간들, 그곳을 찾아 옛 정취를 누리며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처음 둘러본 공간은 오래된 자연림이 있다는 ‘고리울 가로공원’이다. 고리울은 ‘옛날에 있던 마을’이라는 뜻이며 고강동의 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이곳의 위치는 부천시 고강동이며, 실제 행정구역 주소는 신월동과 고강동의 경계선에 있는데, ‘서서울 호수공원’으로 가는 길의 문지기 같은 역할로 긴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원의 입구에 도착하면 커다란 바위가 성처럼 우뚝 서 있다. 여기부터 공원의 시작임을 알리는 돌로 그 옆에는 2010.2.19.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 준공 기념 비석이 서 있다. 그 길로 쭉 들어가게 되면 종합안내도가 나온다. 준공된 지 1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지나온 공원답게 안내도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보이고 세월의 두께가 얹혀 있었다. 고리울 가로공원은 이름처럼 가로로 길게 구성되어 있으며, 크게 진입공간, 중앙광장, 시계광장, 잔디광장 네 가지 포인트로 공원을 둘러볼 수 있게 조성되어있다.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 마주한 공간은 큰 무대였다. 그 맞은편에는 좌석들이 적절히 배치돼 있어 시원한 여름밤, 뜨겁게 펼쳐졌을 야외공연이 저절로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유로운 저녁 시간 꿈처럼 펼쳐진 공연. 공원을 빠져나오는 이들의 얼굴 위로 행복이 물들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광장 주변으로는 울창한 나무들과 더불어 사람들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공연이든 공원이든 사람들의 온기가 채워지고 그들의 발길이 머물러야 했을 공간이 텅 빈 것을 보고 있으니,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큰 상실을 안겨주었는지 그 시간을 새삼 실감했다.
다음으로 눈길을 끈 곳은 ‘아이들과 만드는 전래놀이터’로 벽면에 붙여진 타일들은 어린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다. 붙여진 조각들 하나하나에서 순수한 개성을 엿볼 수 있었지만, 고리울 가로공원의 유수한 시간처럼 벽면의 작품에서도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시간이 흘러 그 아이들도 이제는 어른으로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각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각각의 픽셀이 모여 하나의 완성품을 이루듯 수년간 이어져 온 고리울 가로공원의 시간이 부천의 역사와 맞물려 완벽한 조화로움을 이루는 듯했다.
중앙광장에서부터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디지털시계가 있는 시계 광장이 나온다. 광장이라 칭하기에는 조금 좁아 보이지만, 식물들 사이에 디지털시계가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부족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넘쳐나서 문제이기도 하니, 시간의 중요성을 새겨보고자 하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나름대로 생각했다.
시계 광장의 길 너머로는 나무들은 울창한 숲길로 이어진다. 이 길을 시작으로 호수공원 입구까지 잔디광장이다. 숲을 이루는 공원은 나무들의 수령이 오래되어 하늘을 가릴 듯 빼곡했고, 그늘이 드리워진 숲길 사이로 무성하게 자란 식물들 덕에 여름 한낮에도 산책하기 적당해 보였다. 빼꼼히 드러나는 하늘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길을 비추니 숲의 정령이 된 기분이었다.
공원의 나무 그늘에서는 삼삼오오 모인 어르신들이 바둑을 두고, 아이들은 뛰어놀고, 한가로운 오후의 시간을 담은 그림 같은 정경이 펼쳐졌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고리울 가로공원. 부천과 함께 성장해온 공원은 우리가 모르던 시간 속에서 제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그림을 감상하듯 멀찍이 떨어져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시간을 채운 또 하나의 누군가로서 공원의 흔적이 되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동시에 살아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불현듯 드는 궁금증에 선사시대 유적들이 남아있는 ‘고강선사유적공원’까지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오가며 매번 정류장 이름으로만 만나다가 직접 찾아가 보니 낯선 곳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잘 알고 지내던 친구인 줄 알았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랄까. 아니, 원시 공간에서 옷을 갖춰 입은 문명인이 오히려 원시인이 된 기분이 더 적절한 표현이었다.
책으로 배운 게 전부였지만, 입구는 마치 선사시대 마을 입구에 있는 것처럼 생긴 모양이었다. 큰 비석 바위와 계단이 버티고 있었는데, 이 문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입구 옆에는 고리울 가로공원과 같이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날짜는 새겨져 있지 않았다. 입구를 통과하면 바로 넓은 광장으로 이어지고, 그 옆으로 둘레길 안내 표지판이 있었다.
부천문화둘레길 중 ‘마음이음길’은 고리울 가로공원, 고강선사유적공원 외에 고리울동굴시장, 향토유적길, 부천제일시장 등이 연결된 코스였다. 지나는 인생길에도 다양한 멘토를 만나듯, 둘레길 지도는 이 길을 지나는 이들에게 멘토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묵묵히 제시간을 지키며 오고 가는 이들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말이다.
유적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마음이음길을 걷다보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시간의 달콤함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목덜미를 훑고 지나는 바람 한 점은 기분 좋은 덤이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이 나 있었는데, 그리로 길게 이어진 계단을 밟고 방향대로 쭉 가보니 선사시대 움집터라고 적힌 첫 번째 유적을 만날 수 있었다. 보존을 위해 울타리가 쳐져 있어 가까이서 볼 수는 없고, 움집터에 대한 설명이 안내 표지판에 적혀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말을 새기며, 우리의 미래가 될 아이들이 현장을 보고 느끼면 그대로 공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실제로 유적지 주변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과거 선사유적지에서 우리의 미래가 될 아이들을 보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하나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순환고리 속에서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강선사유적공원은 유적을 보관하는 동시에 공원의 역할도 충분히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사진 찍을 수 있는 포토존과 벤치들이 있었다.
운동기구들이 놓여있던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또 다른 유적을 금방 만날 수 있었다. 바로 고인돌이었다. 선사시대 대표 유물인 고인돌을 실물로 마주하니 신기했다.
예전 초등학교 때, 고인돌이 있는 장소에 답사를 가야 하는 역사과제가 있었는데, 멀게만 여겨졌던 장소가 집 근처 공공시설 안에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비록 간접적인 체험이지만, 공존하고, 과거와 현재가 만나 시간을 공유하는 느낌이었다. 지금의 우리처럼 먼 훗날 미래의 후손이 이곳에서 유적을 돌아보며 우리가 누렸던 이 시간을 거닐게 될 테니 만나고 이어지는 건 시간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한참, 유적을 둘러보고 걷다 보니 선사시대 사람들이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게 된 이유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이곳은 지형이 얕은 언덕임에도 불구하고 고강동 일대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한강 유역 청동기시대 선사인이 살았던 취락지로서 살아가는 데 중요한 목적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가장 기본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부터, 야생의 위험에 노출됐을 때 필요한 것으로 불을 만드는 것이었을 터다. 땅이 내려다보이고, 하늘에 가까우며 소중한 불을 얻을 수 있던 이곳이 여러 조건에 부합해 터를 잡고 살았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마지막으로 터널 같은 고리울 구름다리를 건너다보면 정말 저 너머에 선사시대가 펼쳐져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되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길이 실제 존재하는 건 아닐까, 상상을 더 하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선사시대는 우주가 시작된 모든 시간이라고 한다. 역사 시간에 배우고, 이제 막 고강선사유적공원을 다녀왔다고 해도 까마득히 먼 과거의 시간을 헤아려보는 건 도무지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의 흔적들을 눈으로 접하며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도시 안의 숲을 이루는 공원에서 힐링하고, 유적들을 찾아 둘러보며 상상할 수 있던 시간에 감사했다. 지금껏 몰랐던 소중한 문화재들을 찾아 부천의 숨어있는 보물들을 하나씩 둘러보는 시간도 재미있을 것 같다.
선사시대 삶의 공간이 남아있다는 건 한 개인에게도 이토록 경이로운 일인가 보다. 무관심한 것들의 틀을 깨고 문화유적지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오니 말이다. 기분 좋은 상상은 오래 머무르는 법인지, 시간이 지나도록 가시지 않고 어느 때고 불쑥 튀어나오니 말이다.
어쩌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나누는 일은 무의미한 일일지 모르겠다. 다른 세계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세계에 같은 시간 안에 우리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사진 | 부천시, 양혜민